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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 broXXer - 11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백도] broXXer - 10 검푸른 한야에 싸늘히 이지러진 손톱달마저 노랗게 무르익을 만큼 느지막한 새벽. 으레 푸근한 침구에 누워 곤히 몽중을 기행하고 있을 시각이었다. 옅은 빛 은은하게 자아내는 무드등으로 인하여 어슴푸레한 방 안, 밭은 호흡음이 연방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줄곧 넘쳐흐르는 홧홧한 숨결에 가느다란 입술이 바싹 말랐다. 다부진 외팔로 경수의 어깨를 가뿐히 거머안은 채 잠든 백현이 돌연 곱상한 미간을 찌푸렸다. 예민하게 치켜선 아치형 눈썹 끝 관자놀이로 말간 진땀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마치 악몽을 꾸듯 끓어오른 열에 시달리는 그의 근방으로 급기야 백단향의 산뜻한 페로몬마저 실낱같은 가지를 파르라니 뻗기 시작했다. 불편할 만큼 크고 박차게 뛰는 심장은 그만 깨어나라는 듯 종용했다. 쿵쿵. 점차 고조되는..
[백도] broXXer - 9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버린 밤. 편린에 불과할지언정 백현이 읊조린 진심과 월광보다 형형했던 그의 두 눈은 결국, 경수를 달아나게 만들고 잠 못 이루게 했다. 하나 달이 몰락한 빈자리 뒤에는 필시 말끔하게 개어오는 아침의 조양처럼. 어지러운 생각이 별빛 선와를 이루던 머릿속에도 한 줄기 확신은 찾아왔다. ‘내가 널 얼마나 원하는지 알면 네가 겁먹고 도망칠 것 같아서’ 억수처럼 퍼부었던 자백 속, 제가 도망갈 것 같았다는 말을 토해냈을 때 유난히 백현의 감정은 누수가 심했다. 그 점이 줄곧 숨겨져 있던 요체였다. 여태껏 백현의 사유가 단순히 제게 성애적인 마음이 없어서, 한데도 저는 연신 구애했기에 밀어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정작 백현이 가장 두려워했던 건 본인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백도] broXXer - 8 특별편인 페로몬 과외 에피소드는 추후 제작될 소장본에서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별편은 포스타입에 따로 공개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broXXer: not just brothers 높은 빌딩 위로 말그스름한 야공이 광활했다. 어지러이 방황하는 난운 한 점 보이지 않기에 뭇별들도 수줍게 피어나 반짝이는 날, 개중 몇 찬란만을 벗 삼은 백월 또한 휘영청한 한야였다. 여느 때처럼 단지 내 지하 2층 주차장 한편으로 차를 세운 백현이 빈 조수석에서 검은 코트를 챙기고 운전석을 나왔다. 너른 오른쪽 어깨를 옷걸이 삼아 외투를 걸어두고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눌러 쾌적한 로비 안으로 들어섰다. 차창 너머로 보았었던 검은 천장의 목책 아래, 갈고리처럼 대롱 걸린 은백색 윤곽은 어느덧 하현이었다. 발현한 경수를 눕혀두고 ..
[백도] broXXer - 7 어느덧 지하 1층에 도달한 엘리베이터가 앙다문 문을 열었다. 야윈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쥔 백현이 창백하게 질린 경수를 이끌었다. 좀 전 머리를 쓰다듬었을 때와 같이 조심스러우면서도, 원한다면 뿌리칠 수 있을 만큼 가뿐한 악력이었다. 하나 경수는 거부하지 않았다. 하얀 아우디로 다다를 때까지 앞서가는 백현의 너른 등을 그저 멍하니 뒤따르기만 했다. 여느 때처럼 조수석에 오른 경수는 이후에도 좀체 말문을 열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잿빛 도로를 달리는 내내 오로지 침묵만 삼킨 채 차창만 내다봤다. 겨울이 만연한 도회지의 채도는 여타의 절기보다 낮았다. 봄처럼 온화한 바람을 끌어와 예민한 꽃들을 얼러 곳곳마다 만발을 돕는 날도 아니었고, 여름처럼 뙤약볕을 데려와 뭇 잎사귀의 영혼인 녹음을 ..
[백도] broXXer - 6 끝물에 달한 하오의 공중은 아주 묽게 풀어낸 파란 물감을 바른 듯 힘없이 푸르렀다. 저 멀리 맞은편에서는 빈약한 손톱달을 수장으로 저녁 어스름이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창백히 질렸던 태양의 궤적이 검푸르게 지워져 간다. 곧 밤이었다. 수채화처럼 멀건 하늘을 고스란히 담은 사각 틀의 유리창 너머, 두꺼운 잿빛 암막 커튼 사이로 파리한 볕뉘가 구겨진 이불보를 어렴풋이 비췄다. 침대 옆 탁상시계는 오후 여섯 시 사십일 분. 이윽고 꼬리 숫자가 일에서 이로 바뀔 무렵이었다. 푹신한 베개 위 가지런하게 감겨 있던 두 눈이 스르르 뜨였다. 막 깨어난 경수의 말간 갈색빛 눈동자가 정면의 천장을 망연히 살핀다. 패턴 없이 단조로운 상앗빛 벽지, 시야 우측 하단에 붙박인 네모난 조명을 미루어 자신의 방이었다. 아이러..
[백도] broXXer - 5 멀쩡하던 눈앞으로 돌연 튜베로즈의 하이얀 꽃잎들이 함박눈처럼 우수수 낙화했다. 순백의 꽃밭이 목전을 창백하게 메꿨다. 마치 후각을 통해 곁든 월하향의 씨앗이 폐부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삽시간 만에 싹트고 흐드러진 듯했다. 미지근한 피를 홧홧하게 달구고 냉엄한 이성의 숨을 옥죄는 향내. 휘청한 백현이 급하게 벽을 짚으며 입가를 틀어막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전류가 관통했다. 예민한 아랫배도 저릿해졌다. 이만치 강하고 선명한 페로몬을 직격으로 맞은 적은 처음이었다. 필시 저와 같은 우성이었다. 웬만한 열성 페로몬은 힘껏 개방한다고 해도 우성의 세포를 자극하긴 어려웠다. 어지러운 의식과 희뿌옇게 들뜬 시야를 겨우 다잡은 백현이 눈동자만 굴려 불청객을 노려본다. 그는 아직도 꾸역꾸역 칸막이를 넘으려 하..
[백도] broXXer - 4 체질이란 인간의 종을 나누는 가장 하위분류의 잣대로. 까마득한 옛날에는 신체에 깃든 특질에 따라 양인, 평인, 음인으로 구분했는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명칭이 알파, 베타, 오메가로 일컬어졌다. 그리고 여기서 근원된 것이 계급이었다. 역사적으로 월등하다는 알파는 세간의 우위를 차지했고 하등하다는 오메가는 열위에 깔렸다. 위 주장을 덧붙이기 위하여 뭇 학자들은 알파와 오메가의 근육량이나 골밀도 등의 차이를 증거로 장황하게 열거하였지만, 유구하게 정설을 펼친 학자들은 모두 알파들이었고 그동안은 알파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였다. 그들의 뒤엔 유능한 베타나 오메가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죄다 알파의 권위를 위한 허식에 불과했다. 신체고 지능이고, 어차피 달에 한 번꼴로 발정이 나는 건 알파나 오메가나 똑같..